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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제 드라마 악역의 역할, 의미, 진화

by 자유의 여신봄 2025. 12. 21.

시즌제 드라마의 보편화는 단지 이야기의 연장이나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캐릭터 구조의 재해석, 특히 악역 캐릭터의 진화라는 핵심적인 변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드라마 악역이 선한 주인공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일차원적 인물이었다면, 지금의 시즌제 드라마 속 악역은 보다 입체적이고, 심리적으로 설계된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더 글로리', 'D.P',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등 대표적인 한국 시즌제 드라마를 중심으로, 악역이 어떻게 나쁜 역할을 넘어 서사의 중심축으로 이동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나 진화가 시청자 경험과 콘텐츠 전략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드라마 악역 사진

악역의 역할

과거 드라마에서 악역은 서사의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인물 간 대립 구조를 명확히 보여주고, 주인공의 정의로운 서사를 더욱 부각하는 역할을 담당했지만 시즌제가 도입되면서, 악역은 더 이상 기능적인 존재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보다는 감정을 흔들고, 시청자의 인식까지 조정하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더 글로리'의 박연진 캐릭터입니다. 시즌1에서 연진은 ‘명백한 가해자’로 설정됩니다. 그녀는 학창 시절 동은을 괴롭힌 폭력의 중심이며, 시청자가 비난해야 할 명확한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시즌2에 들어서며 연진의 내면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단지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서조차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정서적 공감의 여지를 갖게 됩니다. 또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는 악역이 드러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집니다. 초반부터 정체가 밝혀진 범죄자를 통해, 시청자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에 주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대개 끔찍한 환경에서 자란 과거, 사회적 고립, 자아 분열 등을 겪어온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악행을 정당화하진 않지만,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청자의 시선을 유도합니다. 이처럼 시즌제가 주는 시간의 여유는 악역의 서사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공간이 됩니다. 악은 고정된 속성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선택과 상처, 구조와 환경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시즌2의 악역은 미움받는 존재로 남지 않고 시청자가 심리적으로 해부하고 싶은 인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악역이 주는 의미

오늘날의 시즌제 드라마 속 악역은 폭력적 대립의 화신보다는 심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전략가에 가깝습니다. 이들이 시청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주먹보다 말, 위협보다 침묵, 갈등보다 통제로 감정을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D.P' 시즌2의 악역 서사는 이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시즌1에서는 폭행 장면이나 가혹행위 등 직접적인 폭력이 중심에 있었지만, 시즌2에서는 악역이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더 강한 통제력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이성우 상병입니다. 그는 자신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서도 주변 병사들의 행동을 조종하고,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군내 질서를 파괴합니다. 말보다 침묵 또는 명령보다 기류 조성으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이 캐릭터는, 권력의 심리적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속 연쇄살인범 캐릭터들도 심리전 악역의 정점에 있습니다. 범죄자는 종종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감정적 결핍이나 분열이 하나씩 밝혀질 때, 시청자는 그들에게 감정의 틈’을 느끼게 됩니다. 작품에서 "내가 사라지기 전에 세상이 날 한 번쯤은 봐주길 바랐어요.”라는 이 대사는 잔혹한 범죄자조차도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악에 대한 인식 자체를 흔드는 힘을 가집니다. 심리전은 시청자와 캐릭터 간의 거리까지도 조절합니다. 물리적 충돌은 외부에서 벌어지지만, 심리전은 시청자 내면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시즌제 악역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들이 서사의 중심이 아니라 시청자의 감정 내부에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악역의 진화

시즌제의 가장 큰 서사적 이점은, 인물의 변화를 유예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시즌 안에서 죽거나 퇴장하지 않는 이상, 캐릭터는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고, 그 변화는 서사의 반복이 아니라 심화된 진화로 나타납니다. 이는 악역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시즌이 거듭될수록 악역 캐릭터는 더 정교하게 설계되고,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될 수 있는 복합적인 존재가 됩니다. '비질란테'를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시즌1에서는 평범한 자경단 vs 범죄자 구도가 중심이지만, 시즌2에 이르러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악역 캐릭터를 통해 제기됩니다. 악역은 범법자를 넘어 법을 비웃고 자신만의 정의관을 내세우는 인물로 진화합니다. 또한 시즌제를 준비하는 작가들은 악역을 변형 가능한 존재로 바라봅니다. 시즌1에서 단순하고 미워 보였던 악역이 시즌2에서는 완전히 다른 정체를 드러내거나, 예상치 못한 감정선과 관계성을 통해 전혀 다른 감정 구조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서사의 회전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가 깊어지는 방식으로 캐릭터가 진화한다는 점입니다.

결론

결국 시즌제 드라마 속 악역은 극의 반동이 아니라, 감정의 중심이며, 이야기의 추진력 그 자체입니다. 과거에는 악역이 죽는 순간 드라마가 끝났다면, 이제는 악역이 끝까지 살아야 드라마가 완성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시즌제 악역은 시청자에게 도덕적 결론을 요구하지 않고, 심리적 질문을 남기며 콘텐츠를 감정적 체험의 장으로 끌어올립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이 시즌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이유는, 이런 구조적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감정의 층위와 내면의 분열을 품은 악역들이 존재합니다. 앞으로도 시즌제 드라마는 더욱 복합적이고 정교한 악역을 탄생시킬 것이며, 그들은 시청자에게 미움받는 존재보다는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또 다른 인간의 얼굴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악역을 통해 드라마를 넘어서 현실과 인간의 심리까지도 읽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